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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6.08.11 선배는 유명한 춤꾼이었다
2016. 8. 11. 10:54 leejiseon


 선배는 유명한 춤꾼이었다. 집회에서, 싸움판에서 그가 춤을 추면 사기가 올라가고 각이 서는 느낌이 제대로 들었다. 우리가 하고 있는 게 멋진 일이라는 자부심을 주는 게 문화공연의 역할이기도 하다면 그의 춤은 정말 그랬다. 머리로는 주저되는 게 많은 보통 사람들도 선배의 공연을 보면 멋지다, 나도 저 사람처럼 활동하고 싶어...라는 생각을 절로 품게 되곤 했다.


 그런데 선배는 정말로 춤꾼이었다. 춤을 점점 더 잘 추게 되었고,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을 이 안에서 녹여보려고 한동안 여러 시도들을 해냈다. 그리고 그것이 때로는 논란을, 하지만 신선한 파장을 일으켜 여러 사람들을 긍정적으로 자극했다. 하지만 시도도, 고민도, 구상도, 설득도, 다 혼자 해내야 했다. 그것이, 넓지 않고 농도가 짙은 그 곳의 한계였다. 한 걸음만 나가면, 아니, 한 걸음만 덜 들어오면 세상엔 이미 더 앞선 예술들이 많았다. 선배는 예술가였다. 예술가의 세계를, 조직은 감당할 겨를이 없었다, 안타깝게도. 정말, 안타깝게도.


 전향을 했다며 춤바람이 났다며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새끼 딴 길로 빠졌다고 선배도 예전에 누군갈 비난하는 걸 들었던 것 같다. 아마 나도 그랬을 것이다. 그 큰 싸움판에서 멋있게 춤을 그어가던 그가 지하의 어느 댄스학원에서 춤선생이 되어 유투브 영상이나 올린다며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아마 나도 그랬을 것이다. 그의 '몰락'을 반추하며 마음을 다잡고, 이제 그가 작아졌다고 느끼고, 하지만 밤중에 무심결에 그의 영상을 보다가 다음 영상을 클릭해가며 한껏 자유로워진 그의 발놀림에 역시 멋지다, 나도...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 선배도 언젠가 그런 밤을 보냈을 지 모른다.


 생활과 활동이 완전히 분리가 되거나 완전히 일체가 되는 것만 가능하다면, 다시 말해 전향이냐 충성이냐만 존재하는 세계는 틀렸다. 그럼 이 세계는 없어져야하거나, 거기서 영원히 탈락해야 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그 조직과 그 개인이 맞지 않았을 뿐이다. 조직을 탓하진 않는다. 조직은 이름 그대로, 하나의 목표를 향해 끈덕하게 서로를 엮어(조직해)가는 것이 본연의 정체성이고 훌륭해지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조직이 아니다. 거기서 우연히 자신의 결을 발견했을 때 그게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이유가 되어선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을 거치다보면 조직도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될 뿐이다. 모든 걸 거느냐 모든 걸 버리느냐 둘 중 하나만 고뇌를 강요하는 사회가 엿 같을 뿐이다.


 빵 굽는 사람이 툭, 은행에서 일 하는 사람이 툭, 그림 그리던 사람이 툭, 본업과 실천이 별개가 아님을, 혹은 별개일 수 있는 상태를 꿈꾼다. 그 작은 툭, 들이 옳은 방향으로 모이게끔 하는 게 아마 그 곳의 역할일 것이다. 선배는 배신자가 아니다. 유별나고 위대한 예술혼 때문만도 아니었다. 그를 비난하는 것은 우리의 툭, 을 더 주저하게 만들 것이다. 그 툭, 이 반대방향으로 향하지 않는 한, 그를 손가락질 할 수 없다. 우리는 더 넓은 사회와 긴 인생을 알 필요가 있었다. 선배도, 나도. 비난을 했던 주체는 조직이 아니라 그 안에서 힘겹게 억누르고 참고 견디는 개인들이었다. 우리는 더 큰 세상과 다양한 삶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선배도, 나, 그 곳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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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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