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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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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8.06.02 그림자를 사랑하는 에세이.
2018. 6. 2. 18:09 leejiseon

그림자극. 무성영화. 픽토그램. 졸라맨. 

낯설지만 익숙한 인간모습이지만 단순한. 친밀한. 단순한 의사소통. 반가움. 기호를 알아낼 있는 재미. 은유. 


그림자를 발견하고 즐거워하는 이유는 뭘까. 닮은 타자. 가장 오래 익숙해온 타자. 복잡한 정밀묘사는 내려놓았다는 과감함. 거울 속은 때로 너무 정확해서 피로하다. 그림자는 굳이 치밀하지 않음으로써, 문제를 단순해버리는 친절함을 발휘한다. 그리고 조용하다. 구구절절 덧붙이지 않고 색채조차 관심 밖이다. 오로지 형태와 농도만으로 태도를 표하지만, 그마저도 이 세상의 관점을 따르지 않는다. 쓸데없이 애를 많이 쓰는 인간들이 언어도단이란 무력감에 무릎이 꺾일 때에도, 슥슥 한붓그리기 만으로 만물을 담아낸다. 관대한 그는 우리의 무심함과 무지를 구태여 꼬집어 책망하지도 않는다. 자랑조차 없다. 


시선도 없고 서술도 없지만 시가 그렇듯 음악이 그러하듯, 일상의 언어보다 함의를 발산한다. 모든 예술은, 언어와 실재의 명징한 속박을 참기 힘들다는 답답함과, 제아무리 두꺼운 사전일지언정 구차해지고야마는 하찮은 글자들의 한계에 대한 안달에서 파종을 시작한. 아니, 그조차 언어와 실재를 1세계로 두는 서툰 착각이다. 예술을 모국어로 삼은 이방인의 수사법은, 표현이 깜짝 놀랍도록 유려하고 경계를 가뿐히 뛰어넘을만큼 유창한 탓에 한낱 언어 세계의 국민인 우리를 초라하게 만든다. 나는, 기꺼이 굴복할지어다. 


모든 언어는, 들으나마나 한 말이라든가 지극히 뻔하고 자주 반복되는 것은 생략하는 관습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생략할지는 그 세계의 까다로운 심미관의 뜻을 따른다. 성급한 외국어 학습자가 익히 알던 것들을 1:1로 치환하는 것에만 노력을 들인다면, 아무리 애원한다한들 우리는 외국어로 꿈을 꿀 수도, 구애를 펼칠수도, 권태를 누릴 수도 없다.


 이미 지겹도록 익숙하게 시선이 머무는 곳이 아닌 사람의 다른 . 안다고 생각했지만 헤아릴 생각조차 해본 없던 사물의 일면에서 그림자는 형체를 집어삼킨다. 쉿. 궁극의 유혹이 그러하듯, 감동의 절정이 그러하듯, '...굳이 말하지 않아도…’ 품위있는 손가락 하나가 보이는가 싶더니 이내, 이미 약속의 세계는 시작되었다. 유한한 언어의 세계에 자만하던 우리는 훅, 숨이 멎은 듯, 말을 잃게 된다.


  하늘 끝까지도 편으로 삼을 그림자의 옷자락이 길어진다, 거대함 속에 요란하고 흠이 많은 몸을 숨긴 나는 급작스레 찾아든 평화에 안도하고 기꺼이 새로운 질서의 도래를 환영한다. 소리까지 삼켜버린 차분함에 키가 커진 나는 고요함과 관용의 질서가 좀 더 오래, 오래 지속되길 소망한다.




@음악극 <몽유병자들>
프랑스 극단 Les ombres portées (레좀브레뽀르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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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소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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